마지막날 송악산 아래 포구에서 우도로 넘어가서 우도에서는 스쿠터를 렌트해서 한바퀴 돌고, 다시 건너와서 파노라마의 성지,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를 들러 그린루체인가 하는 다원의 동굴카페를 잠깐 찍고 - 뭔가 입구부터 너무 돈냄새가 나서 아리까리했으나 의외로 녹차라떼나 녹차빙수는 꽤 퀄리티가 괜찮았음 - 불탑사 오층석탑을 뵙고 서울로 돌아갔지요.
내륙 국도변에서 깨작깨작 놀길 좋아하다보니 그렇게 제주도엘 들락거려도 여태 한번 가보지 않은 마라도/우도를 가본것이 이번 제주행의 특이점. 그리고 관음사하고 불탑사 오층석탑이 특이점이라 하겠습니다. 연대추정이 될만한 석탑 중 제주도 소재의 유일한 석탑이고 대충 고려 중후기쯤 스타일을 하고 있는 탑인데 - 이러나 저러나 국내 유일의 현무암 탑 아니겠습니까.
김유신의 탄생지로도 유명하고 (유명한가; 김유신 생실도 남아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 (生居鎭川 死後龍仁)이라 하여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이래저래 알려지는 그곳, 진천입니다. 그런데 저 생거진천 사거용인은 진천이 살기 좋아서 생긴 말이라고도 하고 허생의 아내 되시는 허씨부인의 설화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하는군요.
옛날 진천의 어느 시골에 허생원 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허생원은 그 딸을 용인으로 시집을 보냈다. 딸이 시집을 가고 보니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시부모님은 식량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살림을 도맡아 하기로 하고 시부모님과 남편에게는 밥을 지어주고 사신은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부지런히 일을 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다. 게다가 튼튼한 아들까지 낳아 더욱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따나자 과부가 된 허씨 부인은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친정인 지천을 오게 되었는데 오는 도중 우연히 과거를 보러가던 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유생은 허씨 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잔꾀를 내었다
"부인,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 눈에 티끌이 들어가 한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어요." 하고 엄살을 부렸다. 허씨 부인은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어서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선비의 눔을 비집고 입으로 훅 불어 주어다.
그런데 허생이 딸의 소식이 궁금하여 딸의 집으로 향하던 중 소복단장(흰옷)을 한 여인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나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허씨 부인이 선비의 눈을 불어준 모습이 마치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허씨 부인은 이런 것도 모르고 유생과 헤어져 친정으로 행하였다. 소나무 뒤에서 이를 지녀보던 허생원은 점점 가까이 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더욱 깜짝 놀랐다, 그 여자는 바로 사신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여 딸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 있었다. 바로 뒤따라 딸이 왔다. 딸이 도착하자마자 허생원은
"출가외인이니 네 어찌 내 집에 발을 들여 놓느냐? 당장 돌아가거라."
하고 딸을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반갑게 맞아주시리라 생각했던 허씨 부인은 크게 슬퍼하여 용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편 과거를 보러가던 유생은 허씨 부인이 눈에 아른거려 가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진천으로 돌아오던 중 허씨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둘은 너무나 기뻐 어찌할 바를 몰라 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원래 부지런한 허씨 부인은 열심히 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항상 용인에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때가 많았다. 그러던 중 용인에 사는 허씨 부인의 아들 용남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어 진천으로 어머니를 찾으러 왔다,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용남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 하였으나 진천에 있는 아들이 자기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하여 용남이는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이 일을 원님에게 이야기하고 판결을 내려 달라고 하였다. 원님은 이 일로 고민을 하였다. 원님의 고민하는 모습을 본 원님의 손자는 원님에게
"할아버지, 무얼 그리 고민하세요? 생거진천, 사거용인인데......"
이 소리를 들은 원님은 무릎을 탁 치며 두 아들을 불러놓고 판결을 내렸다.
"너희들의 효심이 기특하구나 너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는 진천에서 사시게 하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용인으로 모시도록 하여라."하였다.
이렇게 하여 살아있을 때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으로 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여간 이 보탑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96년 창건) 비구니사찰입니다만,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3층 목탑이 있어 저런 희한한 것이 있다니 한번 봐야겠다 하고 간 것인데 막상 가보니 목탑 말고도 참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절이었습니다. 뭐 하나 특이하지 않고 뭐 하나 아름답지 않은게 없더군요. 참 누군가 안목이 탁월한 분이 절에 계신 것 같습니다.
용화사 석불입상은 고려때쯤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거불인데, 김유신의 삼국통일을 기리기 위해서 중건했다고도 하고... 임진왜란때 삼척 장수가 서있는줄 알고 왜구들이 도망갔다는 전설도 있고 뭔가 호국과 관련한 전래와 사연이 많은듯 합니다.
농다리는 고려때쯤 지어진 것이라고 하고 진천군 구곡리 굴티마을의 세금천에 놓여진 돌다리인데 고려때쯤 지어졌다고 하고 돌을 쌓아 양쪽으로 튀어나오게 교각을 만들고 큰 돌로 디딜곳을 이어 만든 희한한 구조인데 천년도 넘게 잘도 다리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양 최장/최고의 돌다리라던가요... 천년이나 묵은 다리다 보니 이런저런 설화도 많은 모양입니다. 임연이 앉은자리에서 뚝딱 지은 것이라든가 뭐 나라에 난이 있으면 운다던가... 하여간 모양새가 특이하고 천년이나 묵고도 여전히 다리로써 기능을 잘 하고 있는 분이십니다.